#27 비오는 날의 추억_ Edinburgh, SCOTLAND 여행_J o u r n e y



 에든버러 날씨는 변덕스러워 화창한 날에도 금방 소나기가 쏱아지고 몇십분만에 다시 활짝 개이곤 한다. 에든버러, 축제가 한참 무르익고 있는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매일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서너 팀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벌써 며칠째 공연 중이다.

그 날 역시 오후에 비가 왔다. 금방 그치겠거니 했는데 그날 따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서둘러 악기를 싸서 박물관 처마 밑으로 대피했다. 그러나 엠프(스피커)는 무거워 도저히 들고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수 없이 우산을 갖고 있는 내가 엠프 위에 앉아 비를 조금이라도 피하기로 했다.

"쏴아아아"

아무도 없는 광장 한가운데, 쏱아지는 빗줄기 사이에 앉아 있는데 참... 느낌이 기묘했다. 비는 거세게 오고 있었고 우산에 '토도독' 떨어지는 빗소리는 빗소리 이외엔 아무것도 안들릴 정도로 유난히 크게 들린다. 저 울타리 건너편 박물관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은 빗소리에 묻혀 움직이는 모양새가 슬로우 모션처럼 보인다. 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빗속 결투신이 떠올랐다. 돌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는 빗방울은 아무리 조그만 우산 속으로 피해도 내 다리를 시나브로 적신다. 이 큰 광장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는 쏱아지는 비 덕분에 나를 가리는 벽 하나 없이 고립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묘하면서 몽롱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코를 찌르는 희안한 냄새와 함께 빗소리에 묻혀 나에게 다가오는지도 몰랐던 어느 한 사람. 처음에 그가 나를 불렀을 때는 깜짝 놀랐고, 그 다음에는 두려웠다. 빗속의 바다 한가운데 섬,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그는 광장에서 종종 보았던 거지 아저씨였다.

악취는 비비린내와 함께 더욱 크게 진동했다. 그렇다고 그 앞에서 코를 틀어막기에는 그에게 실례인 것 같았다. 그는 무어라 내게 말했다. 그러나 빗소리에 묻혀 그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식 억양이었기에 알아듣지 못한 것은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what are you drink? what do you want?"

그가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보이자 나는 그제야 이해를 했다. 가방 안에 몇 병의 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that's ok."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화이트 와인 두 병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고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엇....나는 그를 따라갈 수도 없었다. 내가 우산을 들고 그를 따라가면 엠프가 비에 젖기 때문에. 저 멀리 박물관 처마 밑에서 아이들이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빗소리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채 5분도 안되어 벌어졌다. 

몇분 후, 비가 또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아이들은 얼른 나에게 달려왔다. 

"무슨일이야. 저 거지아저씨가 뭐래?"
"뭐야 정말. 나 저 아저씨 한대 칠뻔 했어. 괜찮아?"
"진짜 해꼬지 하는 줄 알았다니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혼자 있는 상황에 낮선, 그것도 거지 행색의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으니 놀랄만도 하다. 내가 들고 있는 와인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얼른 대답을 재촉했다.

"저 아저씨.. 우리 팬이래. 맨날 우리 공연할때 옆에서 봤고 우리가 최고래. 돈을 자기가 못주었으니 와인을 주고 싶었대."

"아!!"

허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 거지 아저씨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 공연팀 옆에 자리를 잡고 하루종일 보다 우리가 철수하면 그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거지 아저씨가 우리 팬이었다니...자기가 무언가 즐거움을 받았더라면 그 댓가를 꼭 치루어야 하는 유럽 사람들의 특징랄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에든버러에 사는 거지들은 실제로 거지가 아니라는 풍문이 있었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지. 그들도 풍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어.  

노란 화살표 아저씨가 그 주인공, 나중에 사진을 보니 이렇게라도 찍혀 있어서 다행이다.


 

@2006 Edinburgh, SCO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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